[三漢儒學] 재주를 믿는 자, 결국 덫에 걸린다
얼마 전 장자(莊子)의 글을 떠올리다가, 예전에 읽었던 한 대목이 다시 생각났다. 살쾡이와 큰 들소를 비교하면서, 재주 많은 살쾡이는 결국 덫에 걸리고 쥐 한 마리 잡지 못하는 큰 들소는 오히려 살아남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기억나는 것은 내용의 일부뿐이었다. 정확한 문장도, 그 대목이 「소요유(逍遙遊)」에 있었는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기억나는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 AI의 도움을 받아 원문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다시 확인한 문장이 바로 다음 대목이다.
子獨不見狸狌乎?
卑身而伏,以候敖者;
東西跳梁,不辟高下;
中於機辟,死於罔罟。
今夫斄牛,其大若垂天之雲,
此能為大矣,而不能執鼠。
“그대는 살쾡이를 보지 못했는가? 몸을 낮추고 엎드려 먹잇감을 기다리다가 동서로 뛰어다니며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다 덫에 걸리고 그물에 걸려 죽는다. 저 들소를 보라. 그 크기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지만 쥐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그런데 이 대목은 조금 흥미롭다. 장자의 일부 주석가들 사이에서는 「소요유」 전체의 흐름과 맥락에 비추어 볼 때 앞뒤 내용과 다소 어울리지 않아, 다른 곳의 문장이 중간에 끼어 든 것이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전통 주석을 살펴보면 이 대목을 작은 이익과 공명을 좇는 사람에 빗대어 해석하는 등, 여러 층위의 설명이 붙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대목의 의미까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짧은 우화 속에 장자가 보여주는 인간의 삶에 대한 시선이 선명하게 담겨 있다.
살쾡이는 몸을 낮추고 먹잇감을 기다린다. 동쪽으로 뛰었다가 서쪽으로 뛰고, 높은 곳이든 낮은 곳이든 가리지 않고 재빠르게 움직인다. 재주가 많고 영리하다. 그러나 결국 그 재주 때문에 덫에 걸리고 그물에 걸려 죽는다.
반면 큰 들소는 몸집은 하늘에 드리운 구름처럼 크지만 쥐 한 마리 잡지 못한다. 사냥의 재주만 놓고 보면 살쾡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러나 쥐를 잡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닐 필요가 없으니 덫에 걸릴 일도 없다. 사냥의 재주만 놓고 보면 살쾡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러나 쥐를 잡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닐 필요가 없으니 덫에 걸릴 일도 없다.
장자가 여기서 말하는 ‘쓸모없음(無用)’을 단순히 무능함이나 능력의 부족으로 읽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오히려 작은 쓸모에 자신을 맞추지 않는 것, 눈앞의 작은 이익에 매이지 않는 것에 가깝다.
이 대목을 읽으며 요즘 정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권력 주변에는 어디에 힘이 있는지 재빨리 살피고, 누가 실세인지 계산하며, 자신에게 돌아올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지도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골라 하고, 잘못된 일에도 박수를 보내며, 경쟁자나 비판자를 공격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려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장자의 살쾡이에 비유하고 싶다.
정치에서 재주는 필요하다. 능력도 필요하고, 판단도 빨라야 한다. 그러나 재주가 권력을 좇는 기술로 바뀌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덫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된다.
특히 지도자에게 필요한 사람은 잘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정책이 국민의 뜻과 어긋날 때는 그 사실을 전하고, 인사가 적절하지 않다면 그 또한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자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오히려 권력을 오래 건강하게 만든다.
아첨은 충성이 아니다.
잘못된 길로 가는 권력자의 팔을 붙잡아 세우는 것이 진짜 충성이다. 권력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지키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장자의 살쾡이는 재주가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재주가 너무 많았고, 그 재주를 작은 먹잇감을 좇는 데 썼기 때문에 덫에 걸렸다.
반대로 큰 들소는 쥐 한 마리 잡지 못한다. 하지만 쥐를 잡으려고 자신을 낮추고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도 않는다.
정치도 마찬가지 아닐까.
무엇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해 자신의 재주를 쓰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때로는 무엇을 하지 않을 줄 아는 것, 무엇에 매이지 않을 줄 아는 것이 더 큰 힘일 수 있다.
中於機辟,死於罔罟.
재주를 믿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덫으로 들어가는 줄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