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은 교수의 요리에세이 『오늘도 핑크 한스픈』

엄마 곁에서 냄비의 김과 도마 소리를 바라보며 요리를 배워가던 어린 경은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보고 익히고, 맛보고 기억하며 자라난 작은 요리 감각

평범한 집 부엌 한쪽에서 시작된 호기심이 훗날 요리 인생의 씨앗이 되다

 

 

 

3화. 부엌을 기웃거리던 아이

 

부엌은 이상한 곳이었다.

밥을 먹을 때는 금방 사라지는 음식들이
그곳에서는 하나씩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씻은 채소가 도마 위에 올라오고,
커다란 냄비에서는 김이 피어오르고,


조용하던 프라이팬에 무언가를 올리면 갑자기

치익—

소리가 났다.

어린 나는 그 소리가 재미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부엌에 있으면 괜히 주변을 맴돌았다.

“엄마, 뭐 해?”

조금 있다가 또 물었다.

 

“이건 뭐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물었다.

 

“이거 먹어도 돼?”

지금 생각하면 엄마에게는 꽤 귀찮은 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 내 눈에는 부엌이 작은 마술방처럼 보였다.

 

아무 맛도 나지 않을 것 같은 재료들이
엄마 손을 한번 거치고 나면 전혀 다른 음식이 되었다.

 

파는 송송 썰리고,
마늘은 잘게 다져지고,
간장과 참기름이 만나면 익숙한 냄새가 났다.

 

나는 그 과정이 신기했다.

특히 맛을 보는 순간이 좋았다.

 

엄마가 국자를 들어 국물을 조금 떠서 후후 불어 먹어보고는
소금을 한 꼬집 더 넣었다.

어린 나는 그 장면을 꽤 진지하게 바라봤다.

 

‘어떻게 알고 넣지?’

소금이 얼마나 필요한지,
간장이 얼마나 들어가야 하는지,


왜 어떤 음식에는 설탕을 넣고
어떤 음식에는 넣지 않는지.

아무도 내게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옆에서 보고 있었다.

 

둘째딸의 특기였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옆에서 슬쩍 보고 익히는 것.

 

언니를 보면서도 그랬고,
엄마를 보면서도 그랬다.

어느 날은 나도 뭔가 해보고 싶었다.

 

“엄마, 내가 할까?”

엄마가 웃었다.

“네가 뭘 해.”

그 말이 서운하지는 않았다.

 

나는 기다렸다.

그러다가 기회가 생기면 얼른 끼어들었다.

 

상추를 씻어놓으라고 하면
한 장 한 장 꽤 정성스럽게 씻었다.

 

파를 가져오라고 하면
조금이라도 더 싱싱해 보이는 것을 골랐다.

 

그릇을 놓으라고 하면
그냥 아무렇게나 놓지 않았다.

 

큰 그릇 옆에는 작은 그릇.

밥그릇 옆에는 국그릇.

색깔이 비슷한 반찬이 나란히 있으면
괜히 하나를 다른 쪽으로 옮겼다.

 

그때는 몰랐다.

그것도 하나의 감각이었다는 것을.

나는 음식만 본 것이 아니라
식탁 전체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 안에는 아주 일찍부터
‘맛있게 먹는 것’과 ‘예쁘게 먹는 것’이 함께 있었는지도 모른다.

 

밥상 위에 빨간 김치가 있으면
초록색 나물이 옆에 있는 것이 좋았다.

 

노란 계란이 올라오면
괜히 식탁이 환해 보였다.

나는 그런 것을 좋아했다.

 

지금 학생들에게 플레이팅을 가르치면서

“색을 보세요.”

“한 가지 색만 몰리지 않게 해보세요.”

“접시도 음식의 일부예요.”

라고 말할 때가 있다.

 

그러다 가끔 어린 시절의 내가 생각난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반찬 그릇을 이리저리 옮겨보던 아이.

 

그 아이가 오랜 시간이 지나
학생들에게 색과 여백과 균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생은 참 이상하다.

그때는 장난처럼 했던 일이
나중에는 일이 되기도 한다.

 

나는 처음부터 요리사가 되고 싶었던 아이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확실한 꿈을 가지고
“나는 반드시 요리사가 될 거야.”

라고 말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먹는 것이 좋았고,
예쁜 것이 좋았고,
부엌에서 음식이 만들어지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그뿐이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아주 조용히 사람 안에 쌓이는 것 같다.

 

한 번 좋아한 것은
자꾸 눈에 들어온다.

 

예쁜 접시가 보이면 한 번 더 보고,
맛있는 냄새가 나면 어디서 나는지 궁금하고,
누군가 음식을 만들고 있으면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바라보게 된다.

 

그런 순간들이 하나씩 쌓였다.

그리고 훗날 나는 알게 되었다.

인생에서 모든 시작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어떤 일은
“재미있다”에서 시작하고,

어떤 꿈은
“한번 해보고 싶다”에서 시작한다.

 

나는 아마 부엌을 기웃거리던 그때부터
아주 조금씩 요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부엌에는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이 있었다.

 

냄새였다.

밥이 다 되어갈 때 나는 냄새.

참기름을 두른 팬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

마늘을 볶을 때 갑자기 퍼지는 냄새.

 

된장국이 끓기 시작하면
집 안 전체가 밥 먹을 시간이 되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어린 나는 냄새로도 시간을 알았다.

‘이제 밥 먹겠구나.’

그리고 식탁이 차려졌다.

 

언니가 앉고,
동생이 앉고,
나도 가운데쯤 자리를 잡았다.

 

조금 전까지 부엌에서 보았던 재료들이
그릇 안에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변화가 좋았다.

채소 한 줌도 손을 거치면 반찬이 되고,
쌀 한 그릇도 물과 불을 만나면 따뜻한 밥이 된다.

 

요리는 어쩌면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특별한 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일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런 어려운 말을 몰랐다.

 

그저

“맛있다.”

하며 한 숟가락 더 먹었을 뿐이다.

 

나중에 내가 직접 요리를 하게 되면서
엄마가 왜 국자를 들고 그렇게 자주 맛을 봤는지 알게 되었다.

요리는 레시피만 보고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같은 소금 한 숟가락이라도
재료와 양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같은 불에서 끓여도
시간에 따라 음식은 달라졌다.

 

그래서 요리하는 사람은 계속 본다.

냄비를 보고,
불을 보고,
재료의 상태를 보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먹는 사람을 본다.

 

나는 그것이 참 좋았다.

음식이 완성되는 순간보다
누군가 한입 먹는 순간이 더 궁금했다.

 

 

 

 

 

“어때?”

그 질문은 지금도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다.

 

학생이 만든 음식을 먹어볼 때도,

누군가에게 내가 만든 음식을 내놓을 때도,

나는 먼저 묻는다.

 

“어때?”

맛있다는 대답이 들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마 그 마음은
어린 시절 부엌을 기웃거리던 경은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끔 생각한다.

그때 엄마가 나를 부엌에서 계속 쫓아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나는 다시 들어갔을 것 같다.

 

궁금했으니까.

보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예쁜 그릇이 있었으니까.

나는 지금도 새로운 그릇을 보면 마음이 간다.

 

그릇을 보면 먼저 생각한다.

‘여기에 뭘 담으면 예쁠까?’

아마 이것이 내가 요리를 대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재료를 보면 음식이 생각나고,

그릇을 보면 색이 생각나고,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좋아할 맛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세 가지가 잘 만나는 순간,

나는 행복하다.

 

어린 시절에는 그것을 설명할 말이 없었다.

지금은 조금 안다.

그것은 아마

요리를 좋아하는 마음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요리를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다.

엄마의 부엌을 기웃거리며,

냄비에서 올라오는 김을 바라보며,

 

한입 얻어먹고,

예쁜 그릇을 옮겨놓으며,

아주 조금씩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믿는다.

꿈은 반드시 거창하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고.

가끔 꿈은 아주 평범한 곳에 숨어 있다.

 

엄마의 부엌 한쪽에,

작은 밥그릇 옆에,

고소한 참기름 냄새 속에.

그리고 어린아이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한마디 속에.

 

“엄마, 나도 해볼래.”

어쩌면 내 요리 인생의 첫 문장은
그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경은의 한마디

“꿈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좋아했던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지는지도 모른다.”

 

오늘의 핑크 한스픈

오늘 요리를 한다면 완성된 음식만 보지 말고
만들어지는 순간을 한번 천천히 바라보세요.

보글보글 끓는 소리,
채소가 익어가는 색깔,
주방에 퍼지는 냄새.

평범한 한 끼에도 생각보다 많은 예쁜 순간이 숨어 있습니다.

 

 

 

작성 2026.09.04 23:20 수정 2026.09.04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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